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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롯길 연가

  그 산이 거기 있어-2
  이정숙
  




그 산이 거기 있어-2






7월이 깊어가면서 월악산에 드디어 도전해봅니다.
벌써 일주일에 서너번의 산행을 한 지 세달째. 주변의 산 중에서 가장 험하다는 월악산을
비내리는 날, 드라이브 길에 얼결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신륵사쪽으로 올라가 영봉을 800미터 앞두고 돌아오는 무모한 답사를 했습니다.
오로지 우산 하나만 들고 올라가던 산길에서 다행히 힘든 순간이면 산에 오르던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물도 얻고 양갱도 얻어먹으며 더불어 사는 기쁨도 나누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덕산면에서 보덕암을 지나 하봉 중봉을 거쳐 영봉으로 가는 두 번째 산행을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끝이 나지 않을까 싶게 올랐다 싶으면 또 내려가고 암벽을 돌아가는가하면
암벽을 둘러싼 계단을 끝없이 오르내리기를 네시간 정도 하며 하봉 중봉을 가까스로 지나니 드디어 영봉이 보입니다.
영봉은 거대한 암봉이었는데 험준하며 가파르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암벽 높이가 150m, 둘레가 4km나 되는 거대한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하더니 정말 높고 험했습니다.
영봉 못미처 945봉 능선길에서 바로 앞에 영봉이 보여 다 왔구나 안도한 것도 잠시,
영봉은 그리 쉽게 그 품을 내어주지 않고 그 밑에서 암벽을 뒤로 돌아 끝없이 이어진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야했습니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아득한 그 계단길이 아직도 선연합니다.

정상의 봉우리는 마치 석상을 둘러친 듯 바위봉으로, 그 밑을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절벽이라
대체 여길 어찌 올라왔나 싶을 정도로 아득했지만 넘어온 봉우리와 능선을 보니
다시 힘겨운 도전이 값지게 느껴질 만큼 충주호와 마을이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그저 무사히 다시 원점으로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조심조심 왔던 길을 되짚어내려왔는데
올라올 때 안개 자옥해 보이지 않던 호수와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뭄이 심해 바닥까지 드러난 청풍호가 안스러울만치 아득했습니다.







8월의 치악산 자락의 상원사길은 오래전부터 틈만 나면 찾곤 하는 곳이었는데
늘 상원사까지 가보고 남대봉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보질 못해 8월의 시작으로 남대봉을 택했습니다.
상원사는 영원사와 치악산의 이름이 유래된 꿩의 보은설화가 전하는 곳으로
설악산 봉정암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조망이 아주 좋은 곳입니다.
등산객뿐 아니라 피서를 온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름날이 변덕스러워 산을 오르면서 비가 내리기도 하다가 개이기도 하다가 변덕스러웠지만
혹시 몰라 비옷까지 챙겨두었으니 마음놓고 올라갑니다.
상원사는 공사중이라 굳이 다시 들르지 않고 남대봉으로 향하는 길,
갖가지 야생화들이 축축한 그 산능선을 아름답게 수놓아 능선을 오르는 길이 심심하지가 않습니다.
남대봉 정상은 너무도 허술해 이곳이 정상이 맞는가 싶었지만 그 밑에 넓은 터에는
구룡사부터 올라오거나 혹은 고둔치, 향로봉을 통해 오는 많은 등산객들이 식사도 하고 오수도 즐기기고 있었습니다.
천미터가 넘는 많은 봉우리들을 거느린 치악산의 위용이 절로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비가 많이 내려 계곡이 아름다울 거라 여겨 일찍 눈을 뜬 날, 서둘러 소백산 비로봉을 향합니다.
오래전 자주 갔던 천동리코스를 찾았는데 예전과 달리 너무도 많은 것이 바뀌어있습니다.
단양에 살 때 찾았던 다리안 계곡은 여느 관광지와 다름없이 목책과 다리로 가는 길이 제한되어있었는데
계곡 옆길에 설치된 목책길은 오히려 예전의 시멘트길보다 걷기가 좋았습니다.
거대한 물소리와 내내 같이 야영장까지 올랐는데 그곳도 너무나 바뀌어 편안한 쉼터로 변해있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니 아침 일곱시 반, 그곳에서부터 가파른 돌길을 걷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주목군락지에 도착하니 비로소 소백산의 옛정취가 느껴집니다.
능선은 여전했습니다,
단지 그 능선길에 목책길이 생겨나 오로지 그 길로만 비로봉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만 빼고는.
어쩌면 내가 가장 많이 올라왔을 소백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비로봉을 다 보았는데도
마치 처음 온 듯 유려하게 이어진 산맥들이 가슴을 시원하게 합니다.






비로봉 정상도 예전에 내가 왔던 그 곳이 아니고 표지석도 바뀌어있습니다.
충북과 경상도의 표지석이 따로 있었는데 정상 주변의 풍경도 목책길에 둘러싸여
탐방객들의 무분별한 발자취를 제한해 놓아 목책 바깥의 풍경은 자연그대로였습니다.
갑자기 늘어난 산행인구를 보면 이렇게 등산로를 제한해 놓는 것이 어쩌면 정답일 듯도 합니다.
많은 생각과 많은 추억이 떠오릅니다.
내 생의 14년을 단양에서 살면서 가장 지척에 두고 그 그늘에서 쉬던
그 수없던 시간들이 저 능선처럼 아득한 그림자로 내 옆에 섭니다.






그렇게 산을 오르면서 어느새 8월도 그 마지막에 다다르고 벼르고 별렀던 치악산 구룡사길을 향합니다.
언니네와 같이 그 전주에 구룡사 금강소나무숲길로 세렴폭포까지는 미리 가보아서 길이 바뀐 것은 알고 있었지만
원주시내에 차를 두고 구룡사행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출발할 때 일기예보에 비올 확률 30%였는데 어찌할까 하다가 그래도 버스까지 탔으니 그대로 가기로 합니다.
다행히 입구의 가게에 부지런한 할아버지께서 문을 열어놓으신 덕분에 아침 7시인데도 비옷을 살 수 있어 마음이 놓입니다.
하지만 세렴폭포 못미쳐서 비가 너무도 많이 와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처음으로 우중산행을 시작합니다.
그동안 더러 비도 맞고 흐린 날이 많은 산행길이었지만 시작부터 우비를 입고 산에 올라보기는 처음입니다.

다행히 사다리병창에 이르렀을 때 비는 그쳤지만 비가 내린 후라 안개가 장난이 아닙니다.
산을 오를 수록 짙어지는 안개는 정상인 비로봉에 올라서 더 짙어져 앞에 있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버스에서 만나 우리보다 좀 먼저 산에 오른 스물다섯살의 청년 넷이 정상에 도착해있습니다.
안산에서 왔다는 그 네사람은 군을 제대하고 모처럼 만나 피시방에서 놀다가 무작정 산에 가자고 새벽차로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편의점에서 김밥 여덟줄과 물 여덟 개 우비 네 개만 사서 운동화에 반바지 차림으로 올라온
네사람의 젊음이 싱그러워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입석대로 정하고 하산하는데 는개비와 안개가 빚어내는 풍경이 꿈속처럼 아득하고 아늑합니다.






명절의 스트레스가 나와는 상관없어진 지 오래인 홀가분한 추석날, 늦은 아침을 먹고 얼음골 코스로 다시 제비봉을 오릅니다.
제비봉도 많이 오른 산이지만 얼음골로 올라보기는 삼십년만입니다.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은 그 길은 이상하게 나무들도 많이 죽어있고 습한 기운이 많아
한번은 올라갈 코스이지만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늘 북적북적하던 제비봉 정상이 명절 때문인지 아무도 없어 호젓하게 둘이서 전망대에서 호수도 바라보며 느긋한 휴식을 가집니다.
명절인데도 유람선이 운행하는 지 안내하는 말들이 정상까지 들리고 배는 이제는 거의 물이 찬 청풍호를 느긋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월악산을 올라갈 때 바닥까지 드러났던 호수가 한달 사이에 내내 내리던 비로 그래도 70%는 채워진 듯 유려하게 그 녹색의 허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느새 오미자가 익어가는 계절이 돌아와 해마다 오미자를 구입하는 단양 선암계곡의 오미자 농장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미자만 사러 그곳까지 가기는 아까와 도락산을 오릅니다.
상선암에서 시작하는 도락산을 오늘은 채운봉을 거쳐 제봉으로 내려오는 전코스를 목표로 산에 오릅니다.
바위와 바위위에 자라는 소나무들이 마치 대형분재원을 연상하게 하는 도락산은 광덕사가 바라보이는 거대한 암벽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
아직도 자연의 향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깨끗한 화강암이 눈부십니다.
하지만 열두시가 넘어 너무 늦게 산에 올라온 탓에 도락산 정상까지 가지 못하고 신선봉에서 바로 제봉으로 향합니다.
그래도 내려오니 다섯시가 거의 다 되어 서둘러 오미자농장에 들러 오미자를 사서 올해의 효소를 담아둡니다.






남동생의 셋째딸아이가 어느새 돌이 되어 돌잔치를 하지 않는다하여 우리 삼남매가 청풍의 산마루에서 점심을 먹는 것으로
간단히 돌잔치를 대신하고 조카와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동생을 보내고 언니부부와 같이 청풍길을 돌다가 상천마을까지 갑니다.
우리가 월악산 소백산을 다 올랐다하니 형부께서 망덕봉을 추천합니다.

또다시 일찍 눈을 뜬 구월의 어느날, 망덕봉을 향합니다.
용담폭포까지는 언젠가 가 보았지만 망덕봉을 오르기는 처음입니다.
이곳도 개발의 흔적이 여전해서 예전과 달리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폭포전망대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형부가 말하신것처럼 험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도가 높아지고 암릉들이 줄지어 서서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바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길들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사람의 발자욱은 정말 흔적이 남아 자세히 보면 닳아서 드러난 바위길들이 보입니다.
망덕봉 1키로미터가 남았다는 표지판부터는 바위길은 끝나고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집니다.
정상표대신 안내판만 있고 완만한 정상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폭포길의 능선과는 다른 허무한 정상이었습니다.
다음부터는 망덕봉 표지판 1키로미터 지점까지만 등산하기로 다짐합니다.






망덕봉 산행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독수리바위 전망대에서 내려오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휴일이라 대형관광차가 얼마나 많은 등산객들을 풀어놓았는지 올라갈 땐 이곳에서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했는데
다행히 그 산행길이 되돌이코스가 아닌 금수산쪽으로 내려오는 산행코스여서 내려오는 길은 한산합니다.
주차장에 도착해 눈에 보이는 버스만 세어봐도 열한대가 넘어 이 산과 가은산에 몰린 산행객들이 짐작이 됩니다.
전망대에서 느긋하게 상천마을을 돌아보고 금수산 자락과 호수를 바라보는 여유를 즐깁니다.
산을 오르는 기쁨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사는 마을이 저렇게 그림처럼 펼쳐지는 그 여유와 너그러움을 배웁니다.
땀방울이 마르는 그 시원한 바람을 느낍니다.






많은 산을 올랐지만 우리가 가장 마음에 들고 가장 아름답게 느껴져 다시 올라가고 싶은 산행코스로
우리 둘은 주저없이 정방사에서 신선봉에 이르는 능선길을 꼽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그곳을 올라갑니다.
벌써 정방사입구에는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가을을 먼저 선물합니다.
정방사를 지나 미인봉과 학봉을 지나는 그 능선길은 언제든 오르고 싶은 곳입니다.
9월도 중순에 이르면서 느긋하게 오른 그 산행길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60대의 세친구를 유일하게 만나 동행합니다.
무작정 인터넷을 보고 왔다는 그 세분과 동행하며 그동안 둘이 산행하며 찍지못했던 둘만의 사진도 찍고
더불어 가져온 음식도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신선봉 묘지까지 다녀옵니다.
몇시간의 인연은 하산주로 이어져 정방사 입구의 계곡에서 송이전과 막걸리로 정을 나누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이 묵는 ES리조트까지 뒤풀이가 이어집니다.
모처럼 원없이 막걸리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고 달콤한 피로로 집에 돌아와 깊은 잠을 잤습니다.

환하게 네 팔 벌린 산위에서의 시원함과 산이 주는 인연이 푸근하게 정으로 익는 날들입니다.


<2014년 8월~9월>
2014-09-23 18: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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