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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롯길 연가

  불국사는 불국사다.
  이정숙
  



불국사는 불국사다.


“엄마, 나 나가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아침을 먹는 중에 딸아이가 갑자기 말을 꺼낸다.
이제 딸아이는 스페인으로 떠날 날을 열흘 남짓 남기고 있다.
“거기가 어딘데?”
“경주 불국사...”
뜬금없이 불국사라니...
하지만 이번에 나가면 언제 올 지 알 수없는 딸아이의 청이라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우리는 바로 준비를 하고 출발한다.
세시간 반 정도 달려가니 경주 톨게이트다.
그때까지 맑던 하늘이 우리가 톨게이트를 빠져나가자마자 소나기를 퍼붓기 시작한다.
“뭐야, 이런 날씨가 어딨어?”
너무도 세차게 퍼붓는 비에 원래는 불국사를 먼저 보고 점심을 먹기로 한 계획을 수정하여
먼저 점심을 먹고 불국사로 가기로 여정을 변경, 맘에 드는 집을 찾아 빗속을 헤메다가
‘수석정’이라는 이름의 고풍스러운 한정식집을 마침내 찾아냈다.
하지만 바깥정원의 풍경과 실내장식 놋그릇의 육중한 차림새에 비해
음식이 그의 표현대로라면 가격대비로는 별로 불만족해 딸아이와 나는
왠지 그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레 점심을 먹어야 했다.
어쨌든 다행스러운 것은 점심을 먹고 나니 비가 그치고
날이 말갛게 개어있었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불국사에 도착한다.
내가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때 와보고 라희가 다섯 살 무렵인가 와보았으니
근 이십여 년만의 불국사 나들이다.






아득한 기억 속의 불국사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던가...
딸아이 덕분에 나도 수학여행 사진 속의 불국사가 아닌 너무도 아름답게 바뀐
불국사를 보면서 마치 처음 오는 듯 설레는 마음이다.
날이 흐리고 평일인데도 관람객들로 북적이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지만
우리는 서로 이렇게 아름다운 불국사의 풍경이 있을 거라곤
예상 못한 터라 즐겁게 경내를 돌아본다.





신라 경덕왕 때 어느 초파일 밤, 왕 일행은 불국사에 행차를 했을 때,
일행에 끼여 온 구슬아기가 석공 아사달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 버렸지만
아내가 있던 아사달이 탑이 완성될 때를 기다리다 못에 빠져죽은
아사녀의 참변을 듣고 영지로 뛰어가서 울음을 터뜨리고.
그 모습을 본 구슬아기가 뒤따라 와서 함께 도망가기를 애원하다 국
법을 어긴 죄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아사달은 아사녀와 구슬아기의 영상을 합해서 아름다운 탑을 조각하고
그 두 사람을 따라 영지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을 지닌
다보탑 앞에 서서 우리 두 모녀는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생각한다.





라희는 홀로 떨어져 다니며 이곳 저곳 마음에 드는 풍경을 찍는다.
사진 한번 찍으려면 그도 라희도 투정이다.
뭐 그리 사진 찍는 걸 좋아하냐며 지청구 하지만 내 지론은 사진밖에 남는 거 없다... 다.
더구나 라희와 그와 이렇게 셋이 여행을 온 건 처음이다 보니
난 더 많이 그들의 모습을 찍어 남기고 싶은 마음 뿐이다.
뭐라 하던 말던 틈나는대로 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찍는다.
문득, 다보탑을 찍는 라희를 보며 어떤 생각으로 갑자기 이곳에 왔을까,
궁금해지지만 묻지 않고 그냥 그모습 그대로를 찍어놓는다.





정원을 돌다보니 아주 오래된 나무 아래 작은 돌탑들이 즐비하다.
누군가 놓고간 동전들도 탑의 일부가 되어 그곳에 놓여있는데
작은 마음 하나하나가 그렇듯 많은 돌탑을 쌓았으리라
생각하는데 갑자기 앞에 가던 라희가 돌아선다.





라희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곳에서 돌하나를 찾아 정성스레 올린다.
지금 저 아이는 무엇을 빌고 있을까, 또다시 멀고 먼 그 이역땅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저 아이의 마음에는 어떤 소원이 있기에
저렇듯 한 개한개 정성스레 돌탑을 쌓는지....






“오기를 참 잘했네, 딸래미 덕분에 생각도 못한 불국사 구경을 하네.
그런데 너 다섯 살때 여기 왔었는데 기억 안나지?
너 그때 아주 이쁘게 머리 묶어서 같이 관광다니던
일본인 관광객 부부가 네 머리 사진도 찍고 했었는데...”
“사진으로 봐서 기억하는 거지
그때 나 아주 어렸는데 어렴풋하지 뭐...”
딸아이와 주거니 받거니 걷다보니 아까 입구에서 바라본 정원의 반대쪽이다.
어찌 이렇게 곱게 연못과 정원을 단장했는지...
새삼 사람의 힘이 참 위대하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다,
하지만 우리모녀, 이 정원을 놓칠 수는 없지...






불국사를 구경하고 토함산에 오르다가 안개가 너무 심해 돌아나와
그가 가고 싶어하는 경주 남산으로 향한다.
신라인들은 골마다 절을 짓고 바위마다 불상을 만들었는데 자연과 예술이 조화되어
남산 전체가 하나의 노천 박물관으로 형성된 곳으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곳이라고 한다.
남산은 보물 13점, 사적 12개소, 불상 1백3구, 탑 82기, 옛 절터 1백46개소, 왕릉 14기를 품고 있는
거대한 박물관으로 가는 곳마다 신라유적이 산재해 있는 곳이라는데
난 세 번이나 경주를 찾았지만 남산에 와 본 것은 처음이다.

신라인 모두의 절이자 신앙이었던 남산,
그는 경주를 떠올리면 남산이 생각났고 그곳이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 돌아보기엔 너무도 시간이 부족했고
더구나 비온 다음의 여름날 오후는 너무도 습도가 높았다.
게다가 불국사를 보느라 지친 딸아이는 소나무숲을 조금 올라가더니
“나 여기 그대로 있음 안돼? 스페인도 가지 말고
여기 그냥 그대로 나무랑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소나무 하나를 꼭 껴안는다.






결국 다음에 남산은 날잡아서 다시 오기로 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거대한 세 개의 능이 있다.
안내판을 보니 삼릉이라고 한다.
내용을 보니 삼릉의 주인공은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해지는데 확실한 기록은 없다고.
신라초기의 8대 아달라왕과 신라 말기의 53대, 54대왕들이
똑같은 양식의 무덤에 묻혀있다는 것이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 왕릉의 연대 차이는 돌아와 문헌을 찾아보니 무려 700여년의 차이가 있기때문이다.






남산을 잠시 올라가다 내려왔을 뿐인데 여기저기 습기찬 여름을 헤맨 탓인가,
더 이상 돌아볼 기력이 없다.
하지만 남산을 지나치다 보니 포석정이 있다.
예전 수학여행 왔을 때 그 포석정에 물이 흘렀고
선생님께서 종이배를 만들어 술잔이 어떻게 앉아있는 사람에게 전달되는지 보여주셨던 기억이 있었고,
아주 큰 곳인줄 알았는데 다시 와보니 아주 좁고 협소한 곳이다.
물도 없어 너무도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포석정은
귀족들이 일명 놀이터라고 불릴만한 곳으로 보였다.
문헌 상으로 보면 그곳에서 후백제의 왕 견훤이
신라의 왕을 죽인 곳으로도 아주 유명한 곳이었는데
지금 다시 가보니 그다지 좋은 모습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한 나라의 임금이란 사람이 이곳에 와서 흥청망청 술추렴을 하며 놀다가
타국의 왕에서 살해당했다는 곳이 아닌가?
어쩌면 포석정은 지금 말라버린 물처럼
역사적으로 신라가 기울어가는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아닌가 싶다.





포석정을 나오는 차 안에서 라희는 금새 잠이 들었다.
그와 나는 라희가 왜 갑자기 이곳에 오자고 했는지 묻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도 의식속에 역사의 한페이지로 잠들어있던 불국사를 찾게 되었고
언젠가 다시 날을 잡아서 경주남산을 다 돌아보자는 약속을 하며
저물어가는 경주를 뒤로 하고 어둑해진 길을 따라 귀로에 오른다.

<2010/08>
2010-12-10 23: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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