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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글

  단단한 씨앗 외- 송호필
  이정숙
  

단단한 씨앗


해 먼저 뜨는 먼바다에 닿았습니다 당신은 내 오래된 친구 함께 자라온 동반의 길, 사랑을 안개처럼 부리고 성큼 걸어가는 새벽 같습니다

가느다란 대롱 끝 당신은 나와 떨어져 어디론가 갔을 테지요 누구는 새 모이가 되어 하늘을 날다가 작은 거름이 되고 또 누구는 벌레에게 파란 몸을 풀어 배불리 먹이고 꽃 피우고 또 열매 맺어 단단한 자식들 떠나보내고 그러하겠지요

멀리 검푸른 수평선 어슴푸레 빛이 놀고 아 아 눈부신 해 솟아오릅니다 우리를 낳고 기른 어머니 그 기름진 빛, 가득 살아서 우리를 품는 해 몸이 열리고 바다 위를 둥둥 떠도는 몸 따뜻해집니다 차가운 은비늘 물고기가 톡톡 내 머리를 치다가 사라지고 해초 더미에 묻혀 더 멀고 먼 바다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당신, 단단한 씨앗으로 어디에선가 또 무엇이 되어 성성한 꿈이 야물어질 당신 나는 처음의 태양을 보았습니다 내가 본 이 바다와 눈부신 해 그것은 나로 하여금 씨앗이 되게 하신 뜻 단단한 몸을 풀고 작은 먹이가 되어 부푼 가슴 이 아침, 바다에서.





늙은 호박을 보면


가을 볕에 늘어진 싯누런 황금 덩어리
늙은 호박을 보면
할머니 생각 난다
중풍의 할머니
봄 볕 병아리 뽀숭뽀숭한 솜털보다 부드러운
할머니 그 웃음이 생각난다
서릿발 세월 70평생에 그토록 넉넉하셨던

볕 좋은 가을 햇살에
할머니 생각이 난다
누렇게 매달린 늙은 호박을 보면
늙어 저토록 아름다운 걸 보면.





낙지처럼


별 볼 일 없는 놈이
별 볼 일 없는 놈들끼리
마포 낙지 집에서
낙지 안주에 소주를 마신다

최후의 일각
끈질긴 목숨이 쩍쩍 달라붙는
토막 난 산낙지의 삶
나도 산낙지처럼 살 수만 있다면

화끈한 사랑도 없이
아귀같은 욕심도 없이
후끈한 취기처럼 좋은 시절 다 가고
월급 봉투에 갇혀 사는
별 볼 일 없음이여

밖에 눈 내리고
어정쩡 취해서 파하는 길
난 중얼거렸다
낙지처럼
낙지처럼 이라고.





이 시대의 사랑가


빠리바게뜨 빵집을 지나면 윤무부처럼 빵을 한아름 사고 싶다
장난감 가게 진열장을 지나치다보면 집에도 많은 로봇, 불자동차와 인형도 사고 싶다
꽃 가게를 지나가면 장미를 사고 싶고 옷 가게서는 옷을 사고 싶다

사랑을 파는 곳이 있다면
행복을 파는 곳이 있다면

다 주워담을 수 없을 때까지
17% 고리 카드빚을 내서라도 몽땅 다 사고 싶은 것이다
살 수 있는 것들은 하잘 것 없고
살 수 없는 것은 너무 멀리 있구나
사랑이여.





불륜(不倫)


아내의 소망은 소박하다

두 딸 잘 크고

하나밖에 없는 남편 출세하는 것



내 꿈은 그러나 소박하지 않다

잠 많은 아내 잠든 사이

애인과 통화하고 통정하는 것



넌 그렇지 않냐?

허나 네 아들은

네 잘난 손자는

네 후세의 아들놈들은 꿈꾼다



인류 최후의 덕을 배반하고

윤리를 거스른다

그래, 어쩔테냐?





오래된 집


부자들이 지은 집은 오래간다

콘크리트 슬라브 지붕에 녹슨 철대문

아무도 살지 않지만

그 집은 그 자리에 아직도 있다



단지 흙과 나무와 풀로 지었으되

가난한 사람이 지은 집도 오래간다

하지만 사람이 떠나면 금세 허물어진다

이런 집이 진짜 집이다





향기에 대하여


5. 새벽비



그대 몸, 뜨거운 꽃



향기는 그 엷은 피부

뚫지 못해 혼자 타버리고



새벽비, 나는 그저 술 마신다



참을 수 없는 향기여

버릴 수 없는 시간

칙칙한 비린내여



우(雨), 생활의 향기여 .





내소사(來蘇寺)


봄이다

그가 왔고 나는 간다

스치듯 잠깐 마주친 인연

화사한 옷을 걸쳤다



봄이다

산수유 노란 성질머리에

얕은 개울물이 흐르고

수양버들도 덩달아 참지 못한다

간지러운 햇살에 몸을 꼰다



봄은 시끄럽다

전나무 숲길에 잠깐 만난 전생처럼 햇볕

화들짝 놀란다

꾀꼬리 날아간 나뭇가지 혼자 웃는다
2006-11-28 11: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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