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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 망
  이정숙
  

희망


-도종환



그대 때문에 사는데
그대를 떠나라 한다


별이 별에게 속삭이는 소리로
내게 오는 그대를
꽃이 꽃에 닿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대를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고
사람들은 내게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돌아섰듯이
알맞은 시기에 그대를 떠나라 한다


그대가 있어서
소리없는 기쁨이 어둠속에 촛불들처럼
오랫동안 그곳을 지켜온
한 장의 얇은 모포 같은 그대가 있어서
아직도 그대에게 쓰는 편지 멈추지 않는데


아직도 내가 그대 곁을 맴도는 것은
세상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 한다
사람 사는 동네와 그 두터운 벽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모든 아궁이가 스스로 불씨를 꺼 버린 방에 앉아
재마저 식은 질화로를 끌어안고
따뜻한 온돌을 추억하는 일이라 한다


매일 만난다 해도 다 못 만나는 그대를
생에 오직 한번만 만나도 다 만나는 그대를





숟가락을 위하여


-복효근




죽순 몇 개 머윗대 한 다발
좌판 벌이러 임실댁 절뚝이며 장에 갔다


한쪽 다리 고장 난 몸뚱어리가 전 재산
열무 한 단보다 비쌀 것도 없는 것 늘 지고 다니니


뉘 와서 가져갈 것 있으면 가져가 봐라
빈 집 문고리에 꽂아놓은 숟가락 하나


숟가락자물쇠 혹은 빗장,
뱃장 간단하다 단호하다


거룩한 것은 그렇듯 단순하다
숟가락 하나 들었다 놓는 일


세상에서 가장 큰 문은 사람의 입
그 문 열고 닫는 열쇠도 숟가락


끙, 이분음표로 내려놓을 때까지
그 거룩한 숟가락질을 위하여


과거보러 가듯 새벽같이 임실댁 장에 간 사이
빈 집 혼자 적요를 숟가락질 하고 있다






따뜻한 편지
-바람에게


-곽재구



당신이 보낸 편지는
언제나 따뜻합니다
물푸레나무가 그려진
10전짜리 우표 한 장도 붙어 있지 않고
보낸 이와 받는 이도 없는
그래서 밤새워 답장을 쓸 필요도 없는


그 편지가
날마다 내게 옵니다


곁봉을 여는 순간
잇꽃으로 물들인
지상의 시간들 우수수 쏟아집니다
그럴 때면 내게 남은
모국어의 추억들이 얼마나 흉칙한지요


눈이 오고
꽃이 피고
당신의 편지는 끊일 날 없는데


버리지 못하는 지상의 꿈들로
세상 밖을 떠도는 한 사내의
퀭한 눈빛 하나 있습니다.





내부의 나뭇가지


-고형렬



새 한 마리가 내부의 나뭇가지에서 탈출을 시작했다


나뭇가지는 자라면서 새의 탈출을 방해한다
나뭇가지에 앉기를 가지들은 바란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날카로운 가지들은
새의 발에 딱 맞게 자랐다


그 어디에서도 앉을 수 있는 나뭇가지들이 퍼져 있었다
아침마다 햇살까지 들어왔다
퍼지지 않고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래도 새는 그 나뭇가지를 벗어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이 나뭇가지 속에서 눈을 맞고 비를 맞고 살았으면서
그 나뭇가지를 탈출하고 있었다 오늘까지
몸부림은 저놈의 구조와 질서 안에서 벗어나려는
하나의 죽음 충동 같았다


나뭇가지에서 벗어난 새는 다시 생을 받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는 새가 호루라기처럼 울고 있다
아마도 그가 떠난 뒤, 그 나무는 죽었을 것이다
아직도 그 흔적이 인간의 내부에 남아 있다


그대의 나여, 검수(劍樹)의 나뭇가지에서 벗어나라





거짓말


-김수열



"선생님은 무얼 먹고 그렇게 키가 커요?"


풋과일 같은 여자애들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올려다본다
시선은 집중되고 정적이 감돈다


"착한 마음"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아이들 벌떼같이 소리지른다


책상 탕탕 내리치는 놈
자다가 벌떡 깨는 놈
힐끗힐끗 눈 흘기는 놈
머리 싸매고 뒤집어지는 놈
우웩우웩 토악질 흉내내는 놈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놈
교실 안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다


그래, 이놈들아
말도 안 되는 소린 줄
낸들 왜 모르겠냐만
그래도 우기고 싶구나
너희들 앞에서만큼은
착한 척이라도 하고 싶구나
2016-01-30 12: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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