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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글

  은행잎 그렇게 떠나는 날
  이정숙
  

가 을

-이재무



반짝이던 소음이 가라앉고
저녁의 들숨날숨 손에 잡힐 듯 환한
창가에 앉아 귀가 큰 소처럼 서서
가을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한 나무를
오래도록 바라다본다 저 나무는
참으로 바르게 시간의 주인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 계절 환희의 알몸으로 시들고 지친
내 오후의 생에 넓고 시원한 그늘 드리웠던
저 나무에게 그러나 나는 한 바가지 물
한 삼태기의 거름 져 나른 적 없다
나무라고 해서 어찌 인욕의 시간이 없었겠는가
바람이 불고 많은 비가 내리고 또
종아리 다녀가는 회초리처럼 가문 날의 폭염이
그의 생의 멱살 움켜쥘 때도
저 나무는 크게 표정 바꾸지 않고
제 생의 영토 고스란히 지켜 오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저 붉은 잎잎은
울림이 큰 느낌표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슬픔이 지혜를 가져오듯
깨달음은 몸을 부려야 가까스로 인색하게 찾아오는 것
푸르게 젖어가는 저녁의 창가에 앉아
직립으로 살아가는, 수백 수천의 푸르고 붉은 등
가지마다 내걸어 길 밝히는
내 오랜 정인 물끄러미 바라다 본다






홍시

-복효근




누구의 시냐
그 문장 붉다

봄 햇살이 씌워준 왕관
다 팽개치고

천둥과 칠흙 어둠에 맞서
들이대던 종주먹
그 떫은 피

제가 삼킨 눈물로 발효시켜
속살까지 환하다





가을의 시

-강은교



나뭇가지 사이로
잎들이 떠나 가네
그림자 하나 눕네

길은 멀어
그대에게 가는 길은 너무 멀어

정거장에는 꽃 그림자 하나
네가 나를 지우는 소리
내가 나를 지우는 소리

구름이 따라 나서네
구름의 팔에 안겨 웃는
소리 하나
소리 둘
소리 셋
무한

길은 멀어
그대에게 가는 길은 너무 멀어







내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




내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

내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있게 말할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살겠습니다

내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있게 말할수 있도록
사람들을 상처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내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랑스럽게 말할수 있도록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놓아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들국화

-천상병



산등성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가을에 1


-기형도




잎 진 빈 가지에
이제는 무엇이 매달려 있나.
밤이면 幽靈(유령)처럼
벌레 소리여.
네가 내 슬픔을 대신 울어줄까.
내 音聲(음성)을 만들어줄까.
잠들지 못해 여윈 이 가슴엔
밤새 네 울음 소리에 할퀴운 자국.
홀로 된 아픔을 아는가.
우수수 떨어지는 노을에도 소스라쳐
멍든 가슴에서 주르르르

네 소리.
잎 진 빈 가지에
내가 매달려 울어볼까.
찬바람에 떨어지고
땅에 부딪혀 부서질지라도
내가 죽으면
내 이름을 위하여 빈 가지가 흔들리면
네 울음에 섞이어 긴 밤을 잠들 수 있을까
2011-10-28 13: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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