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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글

  가을을 노래한 시 모음
  이정숙
  

-도종환 시인편


<가을 저녁>



기러기 두 마리 날아가는 하늘 아래


들국화는 서리서리 감고 안고 피었는데


사랑은 아직도 우리에게 아픔이구나


바람만 머리채에 붐비는 가을 저녁.





<가을 사랑 >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가을잎>



가을 가고 찬바람 불어 하늘도 얼고

온 숲의 나무란 나무들 다 추위에 결박당해

하얗게 눈을 쓰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도

자세히 그 숲을 들여다보면

차마 떨구지 못한 몇 개의 가을잎 달고 선

나무가 있다 그 나무가 못 버린 나뭇잎처럼

사람들도 살면서 끝내 버리지 못하는

눈물겨운 기다림 같은 것 있다

겨울에도 겨우내 붙들고 선 그리움 같은 것 있다

아무도 푸른 잎으로 빛나던 시절을 기억해주지 않고

세상 계절도 이미 바뀌었으므로

지나간 일들을 당연히 잊었으리라 믿는 동안에도

푸르른 날들은 생의 마지막이 가기 전 꼭 다시 온다고

죽은 줄 알았던 가지에 잎이 돋고 꽃 피고

설령 그 꽃 다시 진다 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 있기 때문에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을날>



딸아이 손을 잡고 성당에서 오는 길

가을 바람 불어서 눈물납니다

담 밑에 채송화 오손도손 피었는데

함께 부른 노래 한 줄 눈물납니다



그렇게 우리 생도 짙어져간다는 것을

믿는 나무들이 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내내 버리지 못하는 아픈 희망

저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푸르른 그리움과 발끝 저리게 하는 기다림을







<가을비>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피었던 꽃들이 오늘 이울고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의 가을시편


<가을 엽서>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가을>



사과가 익었다고

콕콕 쪼아대더니


부리 끝이 시다고

깍깍대는 때까치



<가을, 매미 생각>



허공을 부여잡고 내내 울어대던 매미 소리 뚝, 그치자

바람 서늘해지고

매미가 붙어 있던 자리에

동그란 구멍이 생겼다

그 소란스럽던 햇볕도 꽤나 진지해져서

콩꼬투리 속으로 들어간 놈은 때글때글해지고

수수밭머리에 내리던 놈은 턱 괴고 고개 숙일 줄도 안다

매미는

울기 위해

지금, 울지 않는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매미의 시절이 갔노라고

섣불리 엽서에다 쓰지 말 일이다

몸 속에는 늘 꼼지락거리며 숨쉬는 게 있는데

죽어도 죽지 않는

그게, 바로 흔히들 마음이라고 부르는 거란다



<가을 햇볕 >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

가슴이 뛴다

아가야

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

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먹는

고추장도 되고

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도 되고








-김용택 시인의 가을시편


<가을>



가을입니다

해질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 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가을이 가는구나>



이렇게 가을이 가는구나

아름다운 시 한 편도

강가에 나가 기다릴 사랑도 없이

가랑잎에 가을빛같이

정말 가을이 가는구나


조금 더

가면

눈이 오리

먼 산에 기댄

그대 마음에

눈은 오리

산은

그려지리.
2008-09-23 21: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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