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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글

  대운하 반대 시 모음
  이정숙
  

운하 이후
-박남준


나도 흐르는 강물이고 싶다
반짝이는 모래사장과 때로 여울로 굽이치며
노래하는 강물이고 싶다
새들 날아오르고 내 몸의 실핏줄마다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 떼들의 힘찬 지느러미 소리 귀 기울이는 강물이고 싶다
강물이고 싶다 농부들의 논과 밭에 젖줄을 물리며
푸른 생명들 키워내는 어미의 강물이고 싶다

한때 나도 강이었다
이렇게 가두어진 채 기름띠 둥둥 떠다니며
코가 킁킁 썩어가는 악취의 물이 아니었다
죽음의 강이라는 오명의 대명사를 뒤집어쓰며 버려진 강이 아니었다
발길이 없는 손님을 부르며
목이 쉰 채 뽕짝 거리던 호객행위마저 끊긴 눈물의 부두가 아니었다
애물단지 관광유람선 싸게 팝니다
고소영, 강부자 얼씨구나 몰려들어 땅 떼기하던
운하 부동산 헐값에 세 놓습니다
빛바랜 현수막들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내가 언제 생각이나 했던가 꿈이나마 꾸었던가

아니었다 나는 살고 싶다 살아 흐르고 싶다
이제 나는 범람할 것이다
무섭고 두려운 홍수로 넘칠 것이다
막힌 갑문을 부술 것이다 굴을 뚫은 산을 허물어 산사태로 덮칠 것이다
모든, 그 모든 나를 막는 콘크리트 구조물들을,
이명박표 운하를 해일처럼 잔재도 없이 파괴할 것이다

물푸레나무 푸른 물로 흐를 것이다
그리하여 내 곁에서 빼앗아간 아이들의 웃음소리 다시 찾아와
물장구치며 퐁퐁퐁 물수제비 뜨는 푸른 강물로 흐를 것이다
유년의 색동 종이배를 접어 소원을 띄우는 꿈꾸는 강이 될 것이다
먼 바다로 흐르는 생명의 강으로 살아날 것이다


오, 그녀의 자식들아, 그녀를 죽이지 말아다오
-이재무


그녀의 본적은 산이다
골짜기 박차고 나와
강의 이름으로 들과 도시 가로질러
장단완급으로 걷다가 마침내 생이 끝날 때
바다로 열리는 그녀의 생은 뫼비우스 띠처럼
처음과 끝이 없어 유장하구나
물고기들 밥이 되고 집이 되어 살다가 다시
하늘의 부름을 받고 산으로 가서 신생을 사는
그녀는 거듭 순환과 부활을 반복하는 영원히 죽지 않는 여자다
태어난 이래 늙을 줄 모르는
하늘이 목숨 점지한 이래
이 나라 대지의 통 큰 어머니로 살면서
뭇 생명들 주린 입에 젖 물리는 것을
은근한 자랑과 소명으로 여겨온 그녀
낮에는 산과 마을 으스러지게 끌어안고
밤이면 별과 달 담아 흐르면서
출렁출렁, 한결같은 보폭으로
유사 이래 이 나라가 걸어온 그 많은,
파란만장과 우여곡절과 요철의 세월
만백성과 더불어 울고 웃었다
오, 그녀의 사랑하는 자식들아,
그녀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다오
멀쩡히 살아있는 육신
수술대에 올려놓고 함부로 재어 절단하지 말아다오
그녀는 가봉하기 위해 세탁소에 맡긴 옷이 아니다
책상에 놓인 공작의 도구가 아니다
그녀가 앓으면 우리가 앓고 그녀가 죽으면 우리가 함께 죽는다
지난 80년대 시멘트 댐으로
사족 묶어놓은 이래
그녀는 갖은 질병 앓아왔다
관절염 앓으며 절뚝거렸고
폐결핵으로 붉은 피 쏟기도 했다
오, 그녀의 사랑하는 자식들아,
그녀의 몸에 함부로 칼 대지 말아다오
자궁 드러내고 팔다리 잘라내고
얼굴 깔아뭉개 어찌 살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그런 날이 온다면 그녀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죽은 몸으로 어찌 우리들 주린 입에
젖 물릴 수 있겠느냐
그녀로 하여금 구리 빛 근육으로 싱싱하게 노동하게 해다오
그녀는 그냥 홀몸이 아니다
물이 죽고 땅이 죽고 하늘이 죽어
죄 없는 그녀의 자식들- 새와 꽃과 풀과 나무와 구름과 달과 바람과 벌레와 물고기와 소와 염소와 영희와 철수 등속
죽어가는 것 차마 어미로서 어찌 눈 뜨고 볼 수 있겠느냐
운하 건설은 온갖 쇠붙이 불러들여
그녀의 몸 파헤쳐 찢고
더럽고 무거운 기름때 끌고 와 오장육부 마구 휘저어
그녀의 몸은 안팎으로 검퍼렇게 녹슬 것이다
그녀를 더 이상 슬프게 하거나 노엽게 하지 말아다오
그녀가 우리를 버리지 않게 해다오
하늘이 분노하지 않도록 해다오
하늘이 우리를 떠나지 않게 해다오
사랑으로 세상을 흐르게 하고
풍요로 세상을 넉넉히 적시게 해다오
오, 그녀의 사랑하는 자식들아
그녀의 몸에 함부로 칼 대지 말아다오
고통으로 그녀를 울리지 말아다오
참다 참다 못 견뎌
그녀가 목숨 끊는 날이 오지 않게 해다오
치수가 나라의 살림이다
우리 살림을 우리 스스로 거덜 내지 말아다오


놀랜 강
-공광규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놀래서 파랗게 질린 강



우리 이제 강물 앞에 무릎 꿇어야 하리
-홍일선



대저
우리나라 강물들께서는
청산백운과 다투지 않고서도
서로 의좋게 살아갈 수 있어서
역사 몇백년운운 그것 대수 아니었다
한반도 백두대간 품안에서
유장한 강물소리는 한오백년 구성진 노래였고
청풍명월 따위 시가 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몇줄 시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연치
아스라한 몇천년 오천년이라 하셨던가
그런데 강물께서 대운하건설 소문을 들어
어디 몸이 아프신건지
요즈음 묵묵부답 일체 말씀이 없으시다

강물의 푸른 영혼 속에
굽이치는 역사 아프게 살아야했다
그리하여 어머니 강물이 시작되는 곳
그곳에 시방 막 태어난 신생의 착한 말씀 있었고
이 땅 강물이 끝나는 곳에
새로이 태어나야할 선지식이 계시다고 믿는 사람들
그이들 많이 있었기에
이 나라 아름다울 수 있었을 것이다

강이 맨처음 어디서 발원하여 어디로 돌아가는지
아무도 묻지 않아도
강은 길을 모시고
길은 강을 공경하며
비산비야 비옥한 땅이거나 성근 땅이거나
농업이 계실만한 곳이 보이면 가던 길 멈추어
여기 강마을 도리마을도 그렇게 태어나셨을 것이다

궁벽진 땅 논과 밭 보듬어
오곡백화와 동기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이 나라에 꽃들 피어났을 것이다
벼꽃이었다 보리였다 고구마 감자 고추 참깨 밀이었다
사과꽃이었다 천도복숭아였다 배였다 살구였다
늙은 소나무 실한 솔방울 하나 지상에 살그머니 내려놓았다
막 새잎을 틔우기 시작한 신갈나무는 연두빛을 발하며
강을 천천히 아주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어제밤 어느집 외양간에선 눈매가 참한 암송아지가 태어나셨다
또 어느 집에선 먹성이 좋은 돼지새끼 열두마리 어렵게 눈을 떴다
숲속에선 고라니가 새끼를 순산했다고 아비고라니 발놀림이 분주했을 것이다
강가 갈대밭에서는 붉은머리오목눈이새들 짝짓기가 한창이고
강 끄트머리에서는
큰고니 한쌍이 강의 중심을 찾고 있고
혼인색으로 더 아름다워진 쏘가리 피라미들 숨소리가 여울 속에서
점점 빨라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도리 마을에서 살아있는 것은 다 꽃이었다
그 꽃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사는 사람들
그이들 첫마음이 뿌리내린 마을
그이들 깨끗한 소망이 생명을 보듬어 안는 시간
무자년 정초 신새벽
몸살을 앓고있는 정선 아라리 동강을 거쳐
충주 목계나루 서둘러 지나와서
여주땅 점동면 도리 두물머리 여강에서
잠시 숨고르기 하는 강물이 무거워 보이는 것은
무슨 할말이 더 남아있음인가
강께서 보시기에도
오늘 이 세월이 참으로 불쌍했던 것이다

혹독한 시간이야말로
캄캄한 어둠이야말로
가장 크게 빛나는 꽃이었던 시절
한때 시를 써서 세상을 바꿔보겠다던
초로의 한 사내가
여강 갈대밭에 무릎 꿇어 두어 시간 좋이 앉아있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경부대운하 건설 논의로 상심이 큰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강마을 입구 바람에 펄럭이는
“경부대운하 반대하는자 과연 여주 군민 맞는가”라는
참담한 현수막을 떠올리고 있었을까

그는 강에게 빌었을 것이다
올한해 벼농사 콩농사 고추농사 감자농사 고구마농사 들깨 참깨 농사 복숭아 농사
잘 짓게 해달라고
자식들 무병무탈하게 자라게 해달라고
그리고 또 빌었을 것이다
올해에도 여강 갈대숲 모래톱에
고라니 오소리 수달 큰고니 왜가리 검은댕기해오라기 종다리 물총새 개똥지바퀴 두루미
누치 피라미 치리 쏘가리 버들치 동자개 각시붕어 모래무지들
그이들 맘놓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여강에 돌아와
우리와 함께 세세년년 살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그때 아주 낮은 목소리
강의 말씀 들려왔을 것이다
경부대운하 건설은
그저 재앙이 아니오 흉측한 범죄요 대범죄란 말이요
아아 우리 어머니의 죽음이란 말이요
그러나 가여운 욕망의 경계 너머
어머니께서 읽고서 좋다고 하시는
시 한편 남기고 가고 싶은 옛 시인
그도 강물께서 흐느끼며 조용히 들려주는
강의 말씀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큰고니 두 마리 푸드득
여강 너머 서쪽 하늘을 향해 고단한 날개를 펴고 있었을 것이다
노을은 또 슬프도록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루가 또 그렇게 죄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저 산야마다 눈뜬 강물이
― 생명의 강 순례단 박남준, 이원규 시인에게

이승철


저 산야마다 눈뜬 강물이 그 언제 적부터
뼈아픈 언약 따위에 저리 몸부림치고 있나.
오늘도 어여쁜 강물님의 숨결을 간직하고자
정든 벗들이 울며불며 소리치며 떠나간다.
그맘때쯤 난 어느 곳에서 서럽게 펄럭이는
한 줄기 바람결로 너에게 환생할 수 있겠나.
누항에 지친 날들을 꽃다지로 고이 받들고서
갈 곳 몰라 헤매이던 티티새 한 마리처럼
쉐쉐쉐 소리치다가 달빛에 가늘게 부서지는
뭇 영혼만을 문문히 치어다볼 수 있을 건가.
살아있다면 우리 내일 해 저문 강가에서 만나
피 고운 산죽의 울음으로 산산이 부서지면서
그대 살과 몸피들을 욱신욱신 뒤흔들고 있는
뜻 모를 저 낯짝들을 다시금 기억해야 하리.
저 강가 미루나무들이 세차게 뒤흔들리는 건
뿌리 속 흙가슴들을 더더욱 힘차게 움켜잡기
위함임을 잊지 말자고, 그날 그녀가 속삭였다.
파릇파릇한 추억들이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
강물 따라 길 떠난 벗들 얼굴만이 싱그러웠다.


국토에 바치는 시
-강은교


그대는 희망
왼 나라 산기슭이란 산기슭, 걸어 돌아 다니다가
결코 닿지 않는 벼랑 되어 철쭉꽃 품다가
이마 내민 벼랑의 분홍 뺨
오솔길이다가
속눈썹 내리까는 별 몇
저희들끼리 소곤소곤대는 곳이다가
소곤소곤대며 까르르 속웃음 굽이치는 곳이다가

무지개, 향내나는 날개로 오르는 하늘이다가
언제나 돌아가는
돌아가는 길 보여주는 수풀이다가
먼 수풀의 보이지 않는 들꽃 머리칼이다가

결국 결국 희망이다가

그대 국토여, 님이여
수만 그 여자 허리 아래 누운
역사여.
2008-05-23 19: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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